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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은 다른 삶을 잠시 살아보는 일 ― 원주시립중앙도서관 이전 개관 10주년 특별강연, 김겨울 「읽으며 나아가기」

by 맞춤통신설계사 안PD 2026.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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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은 다른 삶을 잠시 살아보는 일

― 원주시립중앙도서관 이전 개관 10주년 특별강연, 김겨울 「읽으며 나아가기」

원주시립중앙도서관 전경

도서관 강연장은 묘한 공간입니다.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조용히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있지만, 그 사이에는 책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만들어내는 은근한 공감대가 흐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시간을 내어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신 역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리라는 기대감. 2026년 3월 14일, 원주시립중앙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김겨울 작가의 강연 「읽으며 나아가기 ― 읽기를 통해 넓어지는 삶」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습니다.

오늘의 강사를 소개중인 원주시립도서관 관계자

이번 강연은 원주시립중앙도서관 이전 개관 10주년 특별강연으로 진행됐고, 강연 시간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였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물론이고, 요즘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다시 묻고 있던 사람에게도 오래 남을 만한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요?”

강연의 시작을 연 이 질문은 익숙하지만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책을 많이 읽으면 더 현명해지고, 더 깊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겨울 작가는 그 익숙한 믿음에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주변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더라도 깊은 통찰과 따뜻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독서는 무엇일까요. 왜 어떤 사람들에게 책은 여전히 중요하고, 삶을 지탱하는 경험으로 남아 있을까요. 강연은 바로 그 질문을 따라 천천히, 그러나 깊게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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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는 우리의 사고 방식을 바꾼다

김겨울 작가는 독서 이야기에 앞서 먼저 매체에 대해 말했습니다. 기술이 바뀌면 단지 전달 방식만 달라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매체는 인간의 사고 방식 자체를 바꿉니다.

예를 들어 SNS처럼 짧은 문장과 즉각적인 반응이 중심이 되는 환경에서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짧게 읽고, 빠르게 판단하고, 곧바로 반응하는 방식에 익숙해집니다. 강한 자극과 압축된 문장이 중요해지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책은 전혀 다른 리듬을 요구합니다. 책은 독자에게 시간을 요구하고, 집중을 요구하고, 멈춤을 요구합니다. 어떤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무르기도 하고,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가 읽기도 하고, 문득 떠오른 생각 때문에 책을 덮고 한참 다른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바로 그 느린 리듬 속에서 우리는 깊이 생각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경험이 됩니다.


읽기는 본능이 아니라 발명된 능력이다

강연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읽기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말하기는 인간에게 거의 본능에 가까운 능력이지만, 읽기는 다릅니다. 읽기는 인류가 발명한 기술이며, 우리는 그것을 배우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뇌를 사용하게 됩니다. 글자를 보자마자 그것을 단순한 선과 도형이 아니라 의미를 지닌 문자로 인식하는 것 역시 학습의 결과입니다.

독서를 하는 동안 우리의 뇌는 단순히 글자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추론하고, 상상하고, 감정을 이입하고, 다른 관점을 경험합니다. 소설 속 한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려 하고, 낯선 문장 속 세계를 머릿속에서 살아 있는 장면으로 복원해 냅니다.

즉, 독서는 뇌를 많이 쓰는 활동인 동시에, 인간이 후천적으로 길러내는 가장 복합적인 사고 훈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서가 만드는 두 가지 경험

김겨울 작가는 독서 경험을 설명하며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축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분리연결입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이나 저자의 생각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저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는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때 우리는 텍스트와 거리를 둡니다. 이것이 분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또 다른 일을 합니다. 그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려 하고,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서 세계를 바라보려 합니다. 그 사람의 감정 속으로 조심스레 들어가 보려 합니다. 이것이 연결입니다.

독서는 바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특이한 경험입니다. 한편으로는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안으로 들어가 함께 느끼고 함께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책은 거울과도 닮아 있습니다. 거울 속 모습은 분명 나이지만 동시에 내가 아닙니다. 책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책 속의 타인을 읽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안에서 다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책은 내가 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준다

강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 중 하나는 곰팡이에 관한 책 이야기였습니다. 평소라면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존재지만, 그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잠시 곰팡이의 세계를 상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땅에 묻으면 썩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곰팡이가 분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지나쳤던 세계의 작동 원리 속에 사실은 다른 존재의 삶과 활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책은 바로 이렇게 작동합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존재를 보게 하고, 내가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세계를 조금 비켜서 바라보게 합니다. 어떤 책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 어떤 책은 전혀 다른 시대와 다른 삶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그럴 때 독자는 문득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있던 방식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깨달음은 때때로 아주 조용한 해방감으로 다가옵니다.


요약으로는 독서를 대신할 수 없다

요즘은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요약 영상, 짧은 콘텐츠, 인공지능 정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핵심만 빠르게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겨울 작가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독서와 같지 않습니다.

책의 내용을 아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다른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요약은 정보를 줄 수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질문과 머뭇거림, 오래 머무는 감정, 문장 앞에서 멈추는 시간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합니다.

강연에서 독서는 터널을 지나는 일에 비유됐습니다. 터널을 지나고 싶다면 결국 그 터널을 직접 통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책 역시 읽는 시간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경험이 있습니다.

독서의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하는 데 있습니다.


독서를 잘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강연의 마지막에서 김겨울 작가는 무척 실용적인 조언을 남겼습니다.

“연필을 들고 책을 읽으세요.”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질문을 적고, 문장 옆에 짧은 댓글을 남기듯 생각을 써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독자는 더 이상 텍스트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텍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됩니다.

좋은 독후감이나 대단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읽는 동안 떠오른 생각을 붙잡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문장 앞에서 왜 멈췄는지, 왜 마음이 흔들렸는지, 왜 동의할 수 없었는지를 적어두는 순간, 독서는 훨씬 더 살아 있는 경험이 됩니다.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삶을 잠시 살아보는 일

강연이 끝난 뒤 도서관을 나오며 오래 남은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삶을 잠시 살아보는 경험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한 권의 책을 통해 낯선 세계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다시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세계는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넓어집니다.

그래서 독서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와 강한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오래 머무르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은 더 귀해집니다. 책은 그 시간을 우리에게 건네는 드문 매체입니다.

독서는 그렇게,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한 사람의 삶을 확장합니다.


원주시립중앙도서관 이전 개관 10주년 특별강연
김겨울 「읽으며 나아가기 ― 읽기를 통해 넓어지는 삶」
2026.03.14. 14:0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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